3. 악마 ; 마음 속의 방해물 아래의 대화는 라다(羅陀)라는 제자가 '악마가 뭐냐'고 묻고, 거기에 대해 붓다가 설명하는 대목이다. "대덕이시여, 흔히들 '악마, 악마'합니다만, 악마란 무엇입니까?" "라다여, 만약 색(色)이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물이요 교란하는 것이다. 라다여, 만약 수(受)가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자요, 교란하는 것이다. 라다여, 나머지 상(想), 행(行), 식(識) 또한 같으니라. 그러므로 라다여, 이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하나 하나를 악마라 관(觀, 관찰) 방해물이라 관하고, 교란하는 것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 가시라 관하고, 고통이라고 관하라. 그렇게 관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니라." * 관(觀) : 깊이 있게 보는 것. 관찰 ([相應部經典] 23:1 魔. 漢譯同本, [雜阿含經] 6:10 魔) ---------------------------------------------------------------------- 이 제자는 매우 솔직한 젊은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기본적인 뻔한 사실에 대해서도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숨기지 않고 물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흔히들 '무상, 무상' 하지만 무상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또 흔히 '고(苦)'를 말하지만 도대체 그 고란 무엇이냐 라든지, 또 '무아, 무아'라고 하는데 그 무아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그런 문답들이 [상응부 경전]속에서 한 곳에 모아져 있으니 '라다 상응(相應)'이라는 묶음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경전이 왜 그렇게 소중하냐 하면 이 솔직한 젊은이는 불교의 기본 개념에 대해 샅샅이 물었고, 붓다는 붓다대로 매우 명쾌한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가 사용한 여러 말들의 의미, 예를 들어 무상, 고, 무아라는 어려운 말들의 의미를 알려면 이 '라다 상응'의 여러 경에서 가장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뭔가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의문이 생기면 언제나 이 경전을 들추어보면 된다. ---------------------------------------------------------------------- 앞에 인용한 부분도 그런 라다와 붓다의 문답 가운데 하나인데, 여기서 라다가 물은 것은 악마란 대체 무엇이냐는 문제이다. 그런 질문 자체가 그는 이미 악마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붓다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붓다의 답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뜻이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작용이야말로 악마의 정체이니라" 붓다는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을 논할 때면, 먼저 인간을 다섯 부분으로 분석하였는데 (오온 五蘊) 그 다섯 부분이 바로 색, 수, 상, 행, 식이다. 색(色)이라는 것은 인간의 육체, 즉 물질적 요소를 가리키고, 수(受) 이하의 네 가지는 정신적인 작용을 의미한다. 수(受)는 감각이요, 상(想)은 표상(表象)이요, 행(行)은 의지요, 식(識)은 판단 이성의 작용이다. 결국 붓다는 이 다섯 개의 개념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정체를 나타내는 것이라 보고, 악마란 다름이 아니라 그런 다섯 가지 요소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내재적인 방해물이요, 내재적인 교란자요, 내재적인 불안이요, 내재적인 가시라고 말한 것이다. ---------------------------------------------------------------------- 악마에 대한 붓다의 대답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고대 문헌에 자주 악마가 나오지만, 대개 악마를 인간 이외의 별개의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후대 불교 문헌조차 역시 그런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붓다와 그 제자들에게는 악마란 오직 단순한 비유에 불과한 것으로서, 인간의 내적 방해물이나 불안을 가리킬 뿐이다. 또 [상응부경전] 22:63 '취(取)'라는 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다. "색(色)에 집착할 때는 악마에게 붙잡힌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악마로부터 풀려난다." 그리고 여기서도 색, 수, 상, 행, 식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악마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쁜 생각임이 명백하다. 이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이제껏 별로 주의하지 않았던 아함부 여러 경에 산재해 있는 악마 이야기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 대목을 읽어갈수록 그것들이 실로 중대한 뜻을 지닌 문헌임을 알게 될 것이고 붓다와 그 제자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이를테면 [상응부 경전] 4 '악마 상응(相應)'에는 악마 이야기가 25개나 실려 있는데 그 첫째인 '고업(苦業)'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 네란자라 강기슭 보리수 밑에서 명상에 잠겨 있었는데, 그때 붓다는 자기가 고행을 포기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라(악마)가 붓다의 심중을 눈치채고 도전해 왔다. "고행을 떠나지 않아야만 사람의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인데, 그대는 이것을 버린 주제에 청정한 것처럼 자처하는 꼴이 우습구나." 붓다는 그것이 마라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불사(不死) 위해 고행을 닦아 봤으나, 그것이 전혀 이익 없음을 깨달았노라. 그것은 육지에 놓여진 삿대와 같아서 오직 무익할 뿐임을 마땅히 알아라." 그러자 악마는 "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내 정체를 간파하고 있다."고 외치면서 허둥지둥 그림자를 감추었다고 한다. 대체 경전 편집자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이곳에 적어 넣었을까? 아마 붓다로서는 고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것이 매우 곤란하고 중대한 결정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도 아직 그것에 대해 얼마쯤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내심의 불안을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여기에 표현하였으리라. ---------------------------------------------------------------------- 이런 추측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악마 상응'의 24째 경(經)인 '칠년'에 나온다. 이 대목도 깨달음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여전히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고 있던 붓다에게 갑자기 악마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진정 불사(不死), 안온(安穩)의 길을 깨달았다면 너 홀로 그 길을 가는 것이 좋겠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남에게까지 설하려는가." 이 대목은 붓다가 설법 여부를 고민하던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붓다는 처음에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왜냐 하면 여러 가지 위험과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심정을 문학적으로 나타낸 것이 이 악마 이야기이다. 하지만 붓다는 이런 주저함에서 벗어나 마침내 설법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 결심 과정을 묘사한 것이 바로 앞에 나온 '범천 권청' 대목이다. 즉 붓다의 심리적인 두 움직임이 묘사하는 과정에서 하나는 악마 이야기가 되고, 하나는 범천 이야기가 된 것이다. ---------------------------------------------------------------------- 그런 악마 이야기는 붓다가 최초의 설법에 성공하고 60명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떠나 보낼 때 다시 나타난다. 붓다는 떠나는 제자들을 격려하고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다. 이 '전도 선언'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전도 선언'을 한 후에 마라(악마)의 소리가 다시 붓다에게 들렸다. . [상응부 경정] 4:5 '계제(係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스워라, 그대는 이제 세상 악한 이의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도다. 그대는 악마의 사슬에 매였나니 사문이여, 그대는 자유를 잃었도다." 이에 대해 붓다가 대답했다. "나는 진정으로 세상 악한 이의 올가미를 벗어났도다. 나는 악마의 사슬을 풀어 버렸거니 파괴자여, 그대는 패하였도다." 붓다가 설법과 전도를 결심했다는 것은 다시 또 자기 생애에 중대한 의무를 부과한 것이 된다. 그런데 모든 구속에서 가까스로 해탈한 지금, 그것은 또 하나의 속박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새로운 불안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이 악마 이야기는 이런 불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대승 불교 경전에 나오는 붓다와 악마 이야기를 보면 그것을 모두 붓다의 성도(成道) 이전의 일이라고 기록했다. 깨달음 이후에는 악마의 시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즉 대승 경전에 나오는 붓다의 인간성은 아함부의 여러 경전과는 전혀 각도가 다르다. 말하자면 붓다를 이미 인간보다 훨씬 높은 절대자로 인식하고, 그 인간성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깨달음 이후에 악마 유혹이란 있을 수 없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아함부에 보이는 악마 이야기는 주로 깨달음 이후에 일어난 대목들이다. 앞에 든 세 개의 설화가 다 그렇거니와, 그 밖의 것들도 거의 예외 없다. 아함부의 이런 이야기는 바로 붓다의 풍부한 인간성을 표현한 것이어서 우리에게는 실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 이런 악마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붓다도 때로는 식욕의 유혹을 받기도 했고, 어떤 때는 수면의 유혹과도 싸워야 했던 모양이다. 붓다의 만년에 데바다타(提婆達多)가 반역했을 때 붓다는 다쳐서 누워 계셨는데 그 때도 무엇인가 불안을 느낀 것 같다. 또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다가도, 갑자기 이래서 될까 하는 불안도 여러번 있었던 모양이다. '악마 상응'의 14 '적절'이라는 대목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붓다가 코사라 국 에카사라(一葦)라는 바라문 마을에 계실 때, 거기서도 역시 많은 재가신도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셨다. 그때 마라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고타마가 대중에게 에워 싸여 설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 내가 가서 여러 사람을 속여 줄까?" 그래서 마라는 세존 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법을 설함은 현명한 그대의 할 일 아니니 그대여, 그 짓을 굳이 하여서 탐심과 노여움에 매이지 말라." 세존은 그것에 대답하셨다. "남의 이익과 동정을 위해 깨달은 사람은 가르치나니 마는 이미 탐심과 노여움을 진정 모두모두 벗었노라." 그때 마라는 "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나를 간파하고 있다."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의기 소침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 대목 역시 악마 이야기 형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붓다의 심중을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대목은 설법자의 태도에 관한 것인데 여기 나오는 붓다의 태도를 매우 바람직하다. 즉 여기 보이는 붓다의 설법태도는 다른 종교인들의 그것과는 썩 다른 면이 있으니, 거칠게 부르짖는 예언자의 태도도 아니며, 지나친 자신감으로 무반성하게 엮어내는 설교도 아니다. 오직 자기가 과연 이 사람들에게 설법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것에 정말 어울리겠는가, 또는 탐심이나 노여움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겠는가, 이런 인간다운 불안이나 반성이 마음에 일어나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붓다야말로 그런 설법자였음을 이 악마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