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苦)의 원인은 갈애 ◈ 연기와 고 그러면 연기의 원리는 우리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몰라도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붓다는 그 원리를 깨달은 순간 '이젠 됐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인생의 모든 과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으니 붓다로서는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대체 어째서 연기의 원리가 인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될까? 무엇인가 있기 때문에 이것 또는 저것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영원, 불변하는 것이란 인정될 수 없다. 그리고 조건에 의해 존재하는 까닭에 그 조건이 소멸하면 바로 그 존재도 소멸하게 된다. 그러므로 붓다의 과제가 되었던 고(苦)니 생로병사도 마찬가지이다. 일체의 존재가 조건에 의해 성립되는 법칙 속에서는 존재의 일부 성질에 불과한 苦나 생로병사도 당연히 어떤 조건에 의해 생겼났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 조건을 알아내어 없애 버리거나 변경시키면 고도, 생로병사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들은 고유성, 실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연기 법칙을 발견한 붓다는 인생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 ◈ 인생은 고 붓다는 첫 설법의 주제인 4가지 진리를 설하면서 먼저 문제부터 제시했다. "비구들이여, 고의 진리를 말할테니 잘 들어라. 생(生) 노(老) 병(病) 죽음(死)이 다 苦이다. 또한 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苦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苦요,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苦이다. 통틀어 말한다면 이 인생은 바로 苦 그것이다." 붓다가 보기엔 인생 전반이 모두 苦라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붓다가 지니고 있던 자신의 과제였으며 나아가 모든 인류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인생을 있는 대로의 진상에서 파악하려는 노력, 이것이 불교의 기초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 때문에 붓다가 진리탐구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면 문제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진리일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인류도 붓다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붓다는 생노병사를 모두 苦라고 했다. 나중에 불교인들은 이것을 4고(四苦)라고 불렀는데, 이 넷은 그저 괴로움을 몇 개 열거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성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넷은 불교 용어로 '행고(行苦)'에 속한다. 즉 일체가 무상, 변화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인 것이다. 그래서 생(生)까지도 고(苦)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4고통에 뒤이어 몇 가지 고통들이 열거되어 있다. (원증회고 怨憎會苦, 애별리고 愛別離苦, 구부득고 求不得苦) 이것들은 앞서의 4고에 비하면 성질이 좀 다르다. 즉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체험을 세 가지로 대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붓다는 먼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말하고, 뒤이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체험을 설함으로써, 결국 이 인생이란 고(苦)가 아니냐는 결론 내림으로써, 참으로 교묘하게 설득하고 있는 맛이 느껴진다. -------------------------------------------------------------------- ◈ 고의 원인은 갈애 인생이 苦라고 단언한 붓다는 다음으로 그 고의 발생 원인을 설명했다. "인생이 고통이라면, 그것을 발생시키는 조건이 있을 것이니, 그 조건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고의 발생 원인을 말할테니 잘 들어라. 후유(後有)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 그것이 바로 고의 원인이다. 그리고 그 갈애에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가 있다." 고(苦)를 있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붓다는 그것은 갈애라고 했다. 갈애(渴愛)는 팔리 어로 말한다면 tanha인데, 그것은 원래 '목마름'의 뜻이어서 목마른 이가 물을 바라듯이 사납게 타오르는 욕망의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욕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를 넘어선 사나운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이 갈애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 "후유(後有)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한다." 후유라는 말은 내생에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존재라는 의미로서, 즉 미망(迷妄)의 생로병사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씨(원인)가 되는 것이 다름 아닌 갈애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애의 내용에 대해서는 "욕애와 유애와 무유애가 있다." 고 설명했다. 성(性)에 관한 욕망(욕애), 개체 존속의 욕망(유애),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무유애) 그런데 붓다의 갈애 분류 솜씨가 아주 일품이다. 이런 분류는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 ◈ 욕망에 관한 붓다의 태도 붓다는 욕망 자체는 '무기(無記)'라고 본 것 같다. 무기란 '선악을 구별하기 이전의 상태'라는 뜻이다. 붓다는 욕망을 선 또는 악이라고 단정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단정한다는 것이 도리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식욕이라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 식욕에 따라 음식을 먹게 된다. 그리하여 적당히 먹어서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디로 보나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어 도리어 몸을 손상시킨다거나, 자신의 식욕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다면, 그것은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욕망 자체는 무기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작용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고행만이 청정한 행위라는 생각도 극단이요, 욕망에 아무 나쁜 점도 없다는 생각하는 것 역시 극단이다." 금욕주의자들은 욕망을 악이라고 보는 입장이고 쾌락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은 욕망을 선이라고 보기 때문인데, 붓다는 두 입장 모두를 배격하였다. 출가를 단행함으로써 쾌락주의에서도 벗어났고, 고행을 포기함으로써 금욕주의 입장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붓다의 이 두 가지 태도로 볼 때, 붓다는 욕망을 '무기(無記)' 로 본 것이 틀림없고, 오직 지나친 욕심을 경계했던 것이다. -------------------------------------------------------------------- ◈ 욕망의 지나친 작용이 문제 그래서 붓다는 '단순한 욕망'과 '지나친 작용'을 구별하여 욕망의 지나친 작용을 경계할 때는 말을 골라 썼다. 그래서 목타는 상태를 비유한 '갈애'라는 말을 쓴다든가, 활활 불타는 상태를 비유하여 '연소'라고 표현했다. 이 '연소'(불탐)가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탐'으로 변했다. 즉 '탐욕'은 raga라는 원어를 번역한 것인데, '붉음(赤)' 또는 '불에 탄다'는 의미이다. 붓다가 이 용어를 쓴 의도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맹렬한 욕망을 지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이것을 '탐(貪)'이라는 말로 바꾸어 놓는 바람에 그 원어의 뉘앙스는 상실되고 말았다. 그래도 욕망의 지나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점이 다행이다. 그리고 붓다가 갈애라는 말을 쓴 것도 위에서 설명하고 살펴 본 바와 같이 "지나친 욕망의 작용"을 표현하기 위한 배려인 것 같다. -------------------------------------------------------------------- 이처럼 붓다는 욕망에 대해 언급할 경우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건만 우리는 그것을 매우 소홀하게 지나친 것 같다. 붓다는 결코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부정한 것은 욕망 자체가 아니라 '지나치게 사나운 작용'을 경계했던 것이다. 불교가 욕망의 완전한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일반인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낙담하게 될 것이고, 또는 이런 가르침은 완전히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배척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오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붓다가 사용한 욕망이란 말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매우 미묘하고 중대한 뜻이 내포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붓다는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조건이 갈애임을 발견하고 이 갈애에 대해 상세히 검토하였다. 그러면 그 조건이 되는 갈애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다음 설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