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힘사 (불해 不害) 붓다의 유명한 가르침 가운데 '아힘사'가 있다. 아힘사는 "해한다" 또는 "죽인다"의 뜻인 '힘사(himsa)'에 '아(a)'라는 부정어가 붙은 말인데 '불해(不害)' '불살생(不殺生)' '불상해(不傷害)'라 번역된다. 이 아힘사에 관한 대목은 [相應部經典] 3:8 '마리카(Mallika)에 나온다. (마리카 : 코사라 국 파세나디 왕의 왕비 이름. 한역 '승만') 파세나디 왕과 왕비 마리카가 왕궁의 높은 다락에 올랐다. 그 다락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장관이었을 것이다. 북쪽으로 눈덮인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아득히 보이고 또 서남쪽으로는 코사라의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으리라. 잠시 조망을 즐기고 있던 왕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아마 내 생각엔,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 같다. 다른 것이 아무리 소중하다 한들 나 자신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할까? 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나 상인들도 역시 자기를 더 없이 소중하게 여길까?" 그래서 왕은 옆에 있는 왕비에게 물었다. "그대는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것, 더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마리카는 잠시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제게는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듯 생각됩니다. 대왕께서는 어떠십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묻는 말이오." 왕도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서는 자신들의 결론에 대해 약간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붓다가 평소 가르친 것과 다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급히 마차를 달려 기원 정사로 붓다를 찾아갔다. 붓다는 급히 달려온 왕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긍정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디를 가봐도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합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 ◈ 아힘사 (불살생) 다들 자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더 큰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 하고, 자기를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고 싶어한다. 붓다는 이런 생각을 나무라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붓다는 이것을 먼저 깨우치게 했다. "내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남들도 저마마 자기가 가장 소중합니다." 그렇다면 각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서 최종 결론으로 아힘사를 말했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덕목 가운데 이 아힘사(불상생)가 가장 기본이 된다. ------------------------------------------------------------------------------- ◈ 이성의 힘 우리가 건전한 '이성(理性)'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성의 힘을 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고, 반면 붓다야말로 참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理性)이라는 말에 웬지 차가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아예 혐오감을 느낌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성 속에는 뭔가 우리를 질책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애욕과 증오의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제3자 입장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눈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성이다. 그리고 이 눈은 필연적으로 지성적인 맑음을 지닐 수밖에 없기에, 그 눈초리(이성)에서 받는 인상은 차가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차갑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는 것은 아니다. 그런 차갑고 맑은 이성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열에 들떠 있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냉정을 찾을 수 있다. ------------------------------------------------------------------------------- ◈ 이성적인 붓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불교는 어딘지 차가운 데가 있다. 붓다의 말씀 곳곳에서도 그런 차가움이 느껴진다. "이 인생이란 결국 괴로움이다. 너희는 먼저 이 사실을 확고히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붓다의 말씀에는 우리로 하여금 섬뜩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만약 그런 붓다의 말씀을 읽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기 때문일 것이다. 또 붓다는 탐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마치 마른 풀로 횃불을 만들어 들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으며, 만약에 빨리 그 횃불을 던져 버리지 않는다면, 그 불은 그의 손과 그의 온몸을 태우고 말리라." 적어도 이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가슴이 섬뜩해 오지 않겠는가. 또 [법구경]의 한 게는 붓다의 가르침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두들 스스로 악을 행하여 스스로 더러워지고, 모두둘 스스로 악을 떠나서 스스로 청정해진다. 저마다 스스로 청정해지고 부정해지나니, 사람은 남을 청정하게 하지는 못하리." 인과 필연(因果 必然), 응보 무정(應報 無情) ! 붓다는 이 냉혹한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차갑게 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두루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도록 말을 꾸민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은 될 수 없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전락하기 십상이다. 가공(架空)에 취하고 환상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붓다는 신(神)을 내세우지도 않고, 어떤 천국, 어떤 극락도 약속하지 않으며 붓다만 의지하면 모든 죄가 소멸한다는 말도 안했고, 죽음의 공포를 미끼로 영생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붓다가 간 길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길이었다. 그는 온갖 비합리적인 것을 부정하고 타파하고 오직 차겁고 냉철한 눈을 가지고 존재와 인간의 진상을 관찰하고 투시하였다. 그리고 참다운 진리를 발견하였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면 누구나 그런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 ◈ 이성과 감성의 메시지 붓다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성' 활동을 보여 주었다. 먼저,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이다. 애욕과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기를 제3자의 처지에 서서 냉철하게 관찰해 보면 무상·고·무아의 원리는 저절로 발견된다. 다음으로는, 스스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나와 남이라는 자타 대립의 입장을 떠나서 스스로 그 쪽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나에게 내가 소중하듯이 그에게도 그가 소중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알게 된다. 거기에서 자연스레 아힘사나 자비의 덕목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불살생, 자비 같은 얘기를 들으면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 즉 감성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덕목이 진리로서 몸에 배이려면 차디찬 이성적 관찰 결과라야 함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이성적 생활을 하지 못하면 인과의 법칙(연기 법칙)도 알 수 없고, 따라서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 착각하고, 따라서 변치 않는 '자아'를 좇아 집착하게 된다. 또한 남도 나와 같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오로지 자기 애(愛)의 소리에만 매달려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이리"가 되고 만다. 붓다는 참으로 이성적으로 냉철히 판단했던 것이다. 우리의 세계가 그런 수라장이 안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저마다 이성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망상에 잡혀 고통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생을 구하고 서로 이해를 따라 아귀다툼하는 상태를 종식시키며, 우리와 이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모두들 이 '이성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