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性徹) 스님


 돈오돈수(頓悟頓修)


성철 스님은 그 많은 선서(禪書)와 선사(禪師)의 어록(語錄) 중에서
특히 육조 혜능(慧能)의 단경(壇經)을 좋아하셨다.
내가 스님을 만난 처음 무렵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한국 선가(禪家)에서는 대대로
육조단경과 선문염송(禪門염松)을
마치 선(禪)의 교과서처럼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삼아왔기 때문에
스님도 그래서려니 하였다.

그러나 차츰 스님을 만나는 기회가 잦으면서
내 생각이 전혀 안이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육조단경의 내용이 자주 화제가 되었고,
그 때마다 스님의 육조단경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알게 되었다.

뒤에 돈황본(敦煌本)의 번역을 구술(口述)하여 출판한 것으로도
그러한 스님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스님이 육조단경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육조단경이 설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 때문이고
돈오돈수를 좋아하는 것은 스님이 엘리트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돈오(頓悟)란
순서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어떤 계기가 오면 목전(目前)에서 당장 자성(自性)을 깨닫는 것이고

돈수(頓修) 또한
그러한 돈오를 위해서 수행의 단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이 자성을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스님은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달마가 바로 전한 육조(六祖)의 정법(正法)은
 오직 돈오가 있을 뿐 점수(漸修)는 없다.
 이 점수의 가르침은 미혹(迷惑)의 세계에만 있을 뿐이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육조는
 오직 돈오돈수의 원융(圓融)한 깨달음인 견성만을 선설(宣說)하였다."고 했다.

점수란 돈수와는 반대로
순서와 단계를 따라서 점차적으로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수행을 말하며
그러한 수행의 결과로 얻은 깨달음을 점오(漸悟)라고 한다.

따라서 스님은
점오만이 아니라
돈오를 위해서 돈오에 앞서서 닦는 점수,
즉 돈오점수(頓悟漸修)까지도 크게 부정을 한다.

뿐만 아니라 수심결(修心訣)에서 얘기하는
"비록 부처님과 동일하게 돈오하였다 해도
 많은 생(生)을 거듭하면서 지은 업의 찌꺼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망심(妄心)을 없애기 위해서는
 깨달은 뒤에도 수행[牧牛行]을 해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도리를 따져서 아는 교가(敎家)의 해오(解悟)에 지나지 않다 하고,
이 해오와 선가(禪家)의 돈오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까닭을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인용한 종경록(宗鏡錄)에서 제시하고 있다.
"돈오점수는 교리에 깊이 합당하고
 돈오돈수는 종경(宗鏡 : 禪門)에 진정으로 합당하다.
 밝은 거울은 본래 청정하나니 어찌 티끌을 닦을 필요가 있는가.
 이는 곧 육조(六祖)가 본성(本性 : 自性)을 바로 나타내어
 그 점수를 깨뜨린 것이다"

"밝은 거울은 본래 청정하나니 어찌 티끌을 닦을 필요가 있는가."한 말은
육조 혜능(慧能)의 게송(偈頌)에 뿌리가 있다.

육조 혜능은 오조 홍인(弘忍)의 문하(門下)에서 방아찧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성이 노(盧)씨였으므로 그 때는 노행자(盧行者)라고 불렀다.

이 노행자에 앞서
오조 문하에서 수행하는 사람 중에 신수(神秀)가 있었다.
신수는 어려서 노장(老莊)의 학문과 주역을 배웠으며
출가하기 전에 이미 불교에 대한 학문도 상당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20세에 출가하여
오조 홍인을 찾아온 50세가 되기까지 신수가 쌓은 학문은
단연 발군(拔群)의 실력을 자타가 인정했고

또한 오조 홍인의 문하에서 6년을 수행한 끝에
오조 홍인의 후계자를 자처했고
남도 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신수에 비해서 노행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땔나무를 팔아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야 했고
전혀 글을 배운 바도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어느 모로나 비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한 두 사람 사이에
수행의 경지를 비교하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오조 홍인이 법을 이을 후계자를 지명하기 위해서
대중에게 각각 깨달음의 경지를 게송으로 적어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 때, 신수의 게송은
"몸은 곧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臺)와 같다.
 쉬지 않고 열심히 닦고 닦으라. 티끌이 묻을 일 없으리라."하였다.

오조 홍인이 대중에게
깨달음의 경지를 게송으로 적어내라는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른 채
방아찧는 일에 열중해 있는 노행자에게
지나가던 스님들이 이 소식을 전하면서
신수의 게송이야말로 오조 홍인의 법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농반으로 노행자에게도 오도송을 지어 보라고 했다.

이 때, 노행자가 지은 게송은
"보리(菩提)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이 묻으랴."하였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여
식자간(識者間)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신수가 돈오점수를 대표하고,
뒤에 육조가 되어 혜능(慧能)이라고 이름한 노행자가
돈오돈수를 대표하게 된 가풍(家風)이 이 게송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성철 스님이 육조 혜능의 가풍을 잇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성철 스님이 육조의 가풍을 잇고 있는 면목은
신수와 혜능의 다른 면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수는
노행자가 오조 홍인의 법을 이어
남쪽으로 가서 소위 남종선(南宗禪)의 선풍(禪風)을 크게 떨친 것과는 달리
북쪽으로 가서 북종선(北宗禪)을 일으킨다.

그리고 신수는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초청을 받아
장안(長安)으로 진출하여 장안을
중심으로 북종선의 세력을 크게 떨친다.

그러나 육조 혜능은
조계(曺溪)에 머물기를 40년,
장안의 중종(中宗)과 측천무후가 그를 여러차례 초청했으나
그때마다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육조의 가풍과 흡사하게
스님도 평생을 산에 머물렀고
박대통령의 해인사에 와서 만나자 해도 백련암을 내려가지 않았으며
전대통령 때도 역시 산을 나가지 않았다.

전대통령 때,
백련암을 찾아간 나에게
스님은 정부에서 매월 보내오는 돈 50만원을 돌려 줄 것을 걱정하시다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하시며
국가권력과는 가능한 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셨다.

그것은 육조가 국가 권력이나 유력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국가권력에 아첨하기 쉽다해서 아예 멀리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