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宗壽) 스님


 백장(百丈) 의 고청규(古淸規)


중국스님으로 통하던 지원(知圓) 스님이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 선사가 지은 청규(淸規)를 바탕으로
총림(叢林)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청규란 총림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생활규칙이다.

이 청규라고 하는 말의 뜻을 알고 보면
거기에는 불교의 평등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청(淸)은 청정대해중(淸淨大海衆)의 첫 글자를 따온 것으로서
대해(大海)와 같이 청정한 무리,
즉 출가수행하는 비구스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치 모든 강물이 흘러서 끝내는 바다로 돌아가고,
일단 바다에 들어간 강물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거쳐서 왔건,
또 강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닷물과 한맛(一味)이 되고
바다와 같이 청정해지고
한결같이 '바다'라고 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과 같이

출가수행하는 스님들은
출가하기 이전의 출신성분이나 경력과 속명을 버리고
오로지 해탈이라고 하는 한 가지 맛을 추구하는
청정한 무리이기 때문에 이같이 말한다.

부처님은
이전부터 인도에 있어 온 불평등한 사성계급(四姓階級)을 타파하고자
이처럼 상하귀천(上下貴賤)이 없는 평등을 주창하였으며
백장 회해 선사도 그러한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총림의 생활규칙을 청규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총림을 청정하고 평등한 선문(禪門)의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서
대승과 소승의 계율을 참조해서 선문의 독자적인 규칙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청규이다.

그러나 백장 회해 선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청규는
지금 온전하게 전해진 것이 없다.

그 이후에도 여러 청규가 지어졌으며
백장 선사가 지은 청규를 백장고청규(百丈古淸規) 또는 고청규(古淸規)라고 한다.

백장청규(百丈淸規)라고 하면
으례히 『경덕전등록』에 실려있는 '선문규식'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선문규식』은
백장 선사가 지은 청규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정확하게 전한 것이 아니라
긴요한 내용은 없어지고 개요(槪要)만 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율사(律師)로 통하는 종수(宗壽) 스님은
송(宋) 나라 가정(嘉定) 2년(1209)에 무량 종수(無量宗壽)가 엮은
『입중일용청규(入衆日用淸規)』를 바탕으로 총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다른 청규는 번다(煩多)하고
번다한 만큼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은 부분이 많으므로
차라리 번다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지킬 수 있는
일용청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일용청규를 엮은 스님과
그것을 주장하는 스님의 법명이 같은 종수(宗壽)여서
종수 스님이 일용청규를 주장하는 것을 전생의 인연이라 하고,
혹은 종수 스님을 무량 종수 선사의 환생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7백년 전에 중국에서 일용청규를 엮은 종수 스님이
7백년 뒤 한국에 환생해서
7백년 전의 중국에서와 같이 출가하고 스님이 되고
종수 라고 하는 같은 법명을  갖고
또 율장(律藏)을 배우고 율사가 되어
7백년 전의 일용청규를 주장하는 인연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모자란 느낌이 있는,
그러나 기이하다면 기이한 두 스님 사이의 일체감이 없지 않았다.

종수 스님은 일용청규를 주장하면서도
비록 선문규식이 거죽만 전하고 있다 하여도
그런 대로 배워야 할 점은 있다고 하였다.

『경덕전등록』에 실려 있는 선문규식은 아주 짧은 글이다.

무엇보다도 선문규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법당(法堂)이 선원(禪院)의 중심이 되어 있는 점이다.

선문규식은
백장 회해 선사가
불상(佛像)을 모시는 불전(佛殿)을 짓지 않고
오직 설법(說法)하는 법당만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도 불국사에 가면
불상을 모시지 않은 무설전(無說殿)이라고 하는 법당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불전이 도량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을 두고서
스님은 이렇게 걱정을 하였다.

"불전을 짓지 않고 법당만을 세웠다고 한 것은
 선문규식에서 말하고 있듯이
 불조(佛祖)가 친히 불법(佛法)을 위촉하고
 그 법을 이어받은 주지(住持)가 수시로 상당(上堂)하여 법을 설하므로
 주지야말로 불조와 다름이 없는 지존(至尊)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 주지가 그에 합당한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주지가 비일비재한데
 어느 스님과 신도가 주지를 불조와 같이 신(信)하겠는가.”

또 법당은
주지나 조실(祖室) 등 종사(宗師)가 상당해서
부처님과 조사로서 대중에게 설법을 하고 법을 문답하고 응수하여
종지(宗旨)와 종요(宗要)를 선양하는 도량이고,

이 도량에서 청규를 지키면서 수행하는 것은
계율에 합당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인데
계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풍토에서
이 법당의 진실한 주인공이 몇 사람이나 나올지 의문이다 하였다.

그리고 또 선문규식에 보면
도를 배울 뜻이 없음에도 스님의 모양을 하고 대중 속에 섞여 살고
혹은 도량을 어지럽히는 자는
유나(維那)가 붙들어서 대중의 환시리에 절 밖으로 내쫓는다 했는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다.

이런 사람을 절에서 내쫓는 것은
도를 배우는 청정한 대중으로 하여금
평안하게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주지와의 인연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선문규식 중에서
특히 대중 환시리에 잘못을 저지른 스님의 의발(衣鉢)을 불사르고
편문(偏門=不淨門)을 통해서 내쫓는 것은
승려로서의 치욕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
그러한 징벌을 엄하게 시행하는 것은

첫째 대중 스님네의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둘째 크게 참회하게 하고,
셋째 지은 죄과(罪過)로 관(官)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넷째 스님들에 대한 나쁜 평판이 세상에 퍼지지 않게 한다고 한 점을 강조하였다.

최근 도박승들이 법망에 걸려 스님들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나빠진 것을 보면서
종수 스님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새삼 간절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천2백년 전에 이러한 청규를 만들어서
선문(禪門)을 독립된 종파로 세운 백장 회해 선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천2백년 전의 경고가
천2백년 뒤의 오늘에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